1 
어젯밤 꿈 속에 
잎사귀 하나가 내게 걸어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자기는 '말하는 잎사귀'라고.
자신의 나무에 대해,
그 나무가 서 있는 대지에 대해,
그리고 자기를 흔드는 바람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또 그 잎사귀는 내게 말했다.
나 역시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나 자신에 대해,
세상의 모든 이들에 대해, 
나를 흔드는 꿈과 희망에 대해
말하는 잎사귀라고.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져내려 
그 반짝이는 가을 물살에 떠내려갈 때까지
그 흙에 얼굴을 묻을 때까지
우리 모두는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라고.


2 
내 작업실 뒷마당에는 오래된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아침에 이 작업실로 들어서면 맨 
먼저 그 나무에게로 다가가 둥치를 껴안아 보기도 하고, 잎사귀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큰 나무가 저의 품을 열어 지붕을 덮어주고 있는 이 작업실. 이곳이 내게는 더없이 좋은 수도원이고 
명상센터이다. 
나만의 공간. 밤이면 전깃불마저 끄고, 인도와 티벳에서 구해 온 등불 몇 개를 켜 놓고 책을 읽는다. 
때로는 내 안의 침묵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한다. 그러면 나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리고 대지에 몸
을 기대는 마지막 풀벌레 울음 소리도 들린다. 모두가 한 장의 '말하는 잎사귀'처럼 무슨 말인가를 
내게 들려주고 있다. 
나는 귀를 열고 그 소리들을 들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귀 속의 귀'가 열려 그 말들 
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물의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곧 명상과 기도의 순간이다.

한 사람이 교회에 가서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앉아 있었다. 교회의 목사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느님께 어떤 얘기를 하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이 하시는 얘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을 뿐입니다." 
목사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하느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분도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던데요. 우린 그냥 침묵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3 
뜰에 심어 놓은 파초의 넓은 잎사귀 위로 가을비가 후두둑 떨어져내린다. 올해는 내 작업실 뜰에서 
두 그루의 파초가 가장 먼저 빗소리를 알렸다. 한 그루는 어느 노화가의 뜰에서 옮겨다 심은 것이고, 
또 한 그루는 제주도에서 '거위 아저씨'가 보내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가을비가 그치면 아열대 식물인 파초는 잎사귀가 꺾이고, 생명을 다할 것이다. 그 뿌
리를 겨울 내내 지하실의 어둡고 따뜻한 곳에 보관하리라. 이듬해 봄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하면서. 
마지막 가을비가 파초 잎을 너울거리게 하는 이 아침, 아일랜드 지방의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었다. 

당신의 손에 언제나 할 일이 있기를,
당신의 지갑에 언제나 한두 개 동전이 남아 있기를, 
당신의 집 창틀에 언제나 해가 비치기를,
이따금 당신의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친구의 손길이 언제나 당신 가까이 있기를, 
그리고 신께서 당신의 가슴을 기쁨으로 채우기를. 



『작은 이야기』(1999년 11월)에서, 류시화



      A. Vivaldi / 12 Violin Concertos "La Stravaganza", OP.4 No.11, 2악장 Largo
               Rachel Podger,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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